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천개(天開). 안동 출신. 아버지는 감사 성구(聲久)이다. 1687년(숙종 13)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언, 지평을 역임하였고, 1693년에는 도당록(都堂錄)에 오르고 수찬(修撰)이 되었다. 1690년 정언으로 재직중 세자책봉하례(世子○封賀禮)에 참석하지 않은 영돈령부사 조사석(趙師錫)을 '교만하고 인신(人臣)의 예(禮)가 없다.'고 탄핵하여 귀양보냈다. 그런데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숙종의 미움을 받아 실각하고 소론이 득세하자, 파직당하여 명천(明川)으로 귀양갔다. 저서로는 '북천록 北遷錄'과 잡저(雜著)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