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권유(權惟)
  • 안동권씨(安東權氏),  출생~사망 : 1625 ~ 1684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차인(次人). 호는 여옹(旅翁). 증조는 권극관(權克寬)이고, 생증조는 권극례(權克禮)이며, 조부는 예조좌랑(禮曹佐郞) 권득기(權得己)이고, 아버지는 조선 중기의 이름난 학자이자 관료인 탄옹(炭翁) 권시(權○)이다. 외조는 오암(娛菴) 박지경(朴知警)이고, 처부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다. 정릉참봉(貞陵參奉)을 제수 받으면서 관계(官界)에 들어와 1678년(숙종 4)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 1680년(숙종 6) 장예원사평(掌隷院司評)을 거쳤다. 외직으로는 1682년(숙종 8) 전의현감(全義縣監)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공주진관병마절제사도위(公州鎭管兵馬節制使都尉)를 지냈다. 1684년(숙종 10) 병환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유성(儒城)의 구장(舊庄), 지금의 대전시 탄방동으로 내려왔다. 관리로서 청렴결백하였으며, 평소 성품이 강직하여 장인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과 매부인 명재(明齋) 윤증(尹拯) 에게도 종종 직언을 하였다고 전한다. 사후 아들인 유회당(有懷堂) 권이진(權以鎭)으로 인해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좌찬성겸도총관(議政府左贊成兼都摠管)에 추증되었다. 묘는 처음에는 대전시 유성의 행곡(杏谷)에 있었으나, 뒤에 인근 무수동(無愁洞)으로 옮겨 부인과 함께 합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