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문흥(李文興)
  • 성주이씨(星州李氏),  출생~사망 : 1423 ~ 1503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질보(質甫). 호는 나암(羅菴). 국(菊)의 아들이다. 1462년(세조 8)진사에 합격, 1469년(예종 1)교수로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72년(성종 3)에 '예종실록'을 수찬하는 데 참여하였으며, 1482년 사옹원첨정에서 성균관사성으로 전임되어 유생교육에 몰두하였다. 그간 타직으로 전임한다는 말이 있을 때마다 여러 관아에서 유생교육에 최적임자라며 전임을 반대하여 20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1493년 성균관 유생 박광영(朴光榮) 등이 유생의 스승으로 가장 존경할만한 인물이며 많은 인재를 길러내었으니, 그 문하에서 조정의 대부(大夫)들과 임금께 경서(經書)을 가르치는 경연관이 많이 있음을 들어 포상할 것을 상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왕의 특명으로 한 품계 올려 포상을 받았다. 79세에 유해라도 고향에 묻히기를 빌어서 조정을 떠났다. 벼슬이 성균관대사성에 이르고, 용궁(龍宮)의 기천서원(箕川書院)에 향사(享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