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민충남(閔忠男)
  • 여흥민씨(驪興閔氏),  출생~사망 : 1540 ~ 1605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직부(直夫). 뒤에 이름을 중남(中男)으로 개명하였다. 부사과(副司果) 우(祐)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1561년(명종 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72년(선조 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인 1573년 한림(翰林)이 되고, 이어서 이조정랑, 응교 등의 관직을 거쳐 1594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초수(超授)되었다. 이어서 안주(安州), 중화(中和)의 수령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1600년 동부승지가 되고, 1603년 우부승지가 되었다. 1605년 가선대부가 되면서 예조참판에 올랐다. 그는 선정하는 공직자로 널리 알려졌고, 그러한 성망(聲望)에 따라 여흥군(驪興君)에 봉하여졌다. 1605년에 그가 죽자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