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지혼(志渾). 호는 야당(野堂). 아버지는 좌의정 명원(命元)이다. 공신의 적자(嫡子)로 중림찰방(重林察訪)에 초임되었다. 뒤에 홍산현 감으로 있을 때 광해군 비인 유씨(柳氏)의 오빠 희발(希發)이 딸과의 결혼을 청했으나 이를 거절하여 파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복관되어 한성부서윤, 익산군수, 안성현 감, 중추부경력, 사섬시부정(司贍寺副正) 등에 제수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아 모두 나가지 않았다. 1646년(인조 24)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에 승진되었다. 뒤에 오성군(鰲城君)에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