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중통(仲通). 형의 손자로, 관찰사 성임(聖任)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각(李恪)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정언에 재임 중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역적을 치는 것은 천하의 대법이니 왕이라도 사은(私恩)으로 용서할 수 없다 하여 영창대군을 처형할 것을 적극 주장하였다. 그뒤 1615년 병조좌랑이 되고 이어 병조정랑을 거쳐, 1621년 부승지가 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져 관직을 삭탈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