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중재(仲材). 아버지는 사도시첨정 치잠(致湛)이다. 1513년(중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19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교서관정자, 성균관, 예문관의 전적, 기사관을 거쳐 예조정랑 등 청요직을 지냈다. 그러나 늘 어머니의 병환을 염려하여 내직에 있기보다는 외직에 나가기를 원하여 울산부사, 풍기군수, 청송부사를 지냈고, 영천군수가 되었다. 이황(李滉)이 풍기에 있을 때 서로 왕래하며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