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중원(仲遠). 대사헌(大司憲) 박응복(朴應福)의 손자로, 아버지는 길주목사(吉州牧使) 박동망(朴東望)이고, 어머니는 광산노씨(光山盧氏)로 생원(生員) 노수근(盧守謹)의 딸이다. 일찍이 과거 공부를 하여 훌륭한 문장으로 또래의 부러움을 샀으나, 어머니 상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로는 벼슬길에 뜻을 접고 광주(廣州) 월천(月川)에서 성리학(性理學)에 정진하였다. 1644년(인조 22) 12월 18일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는 현감(縣監) 권흡(權恰)의 딸로, 3남 2녀를 두었다. 큰아들은 박세추(朴世樞), 둘째 아들은 장령(掌令) 박세장(朴世樟), 셋째 아들은 박세헌(朴世櫶)이다. 시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몇 편의 고시(古詩)를 남겼는데, 송곡(松谷) 조복양(趙復陽)은 석주(石洲) 권필(權○)에 못지않다고 칭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