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신한(申瀚)
  • 고령신씨(高靈申氏),  출생~사망 : 1482 ~ 1543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중용(仲容). 증조부는 숙주(叔舟)이고, 좌의정 용개(用漑)의 아들이며, 부인은 임맹영(任孟瑛)의 딸이다. 이목구비가 그림과 같아 신선의 풍자가 있었다. 중종반정 때 아버지와 같이 공을 세워서 선전관이 되었고,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10년 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 사헌부감찰이 되었고, 이후 공조, 호조, 형조의 낭관을 거쳤다.이 시기에 한동안 유자광(柳子光)의 당여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1521년부터 배천, 선산, 광주(光州), 광주(廣州), 진주 지역의 수령을 역임하면서 관직에 충실하여 사사로운 일을 엄금하였으므로 선치수령(善治守令)으로 표창되기도 하였고, 일반행정실무에 밝아서 평시서(平市署), 내자시, 군자감, 장예원, 사도시(司○寺), 사섬시(司贍寺)의 행정관료로 크게 활약하기도 하였다. 1528년 대동찰방(大同察訪)으로서 사행(使行)시의 비밀매매행위를 금단하기도 하였고, 1540년 성절사(聖節使)로서 중국에 가서 그곳 사정을 관찰, 보고하기도 하였다. 1543년에 상호군(上護軍)으로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