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중연(仲淵). 호는 섬계(剡溪), 서산(西山). 증조부는 이상의(李尙毅)이고, 조부는 이지안(李志安)이며, 아버지는 매산(梅山) 이하진(李夏鎭)으로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이하진은 1654년(효종 5) 갑오식년사마시(甲午式年司馬試)에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고, 1666년(현종 7) 병오식년문과(丙午式年文科)에 갑과 2등으로 급제하여 도승지(都承旨)와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였다.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이후산(李後山)의 딸이다. 이후산은 1638년(인조 16) 무인정시문과(戊寅庭試文科)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여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와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하였다. 형은 청운(靑雲) 이해(李瀣)이며, 동생은 조선 후기 실학의 남상(濫觴)이라 불리는 성호(星湖) 이익(李瀷)이다. 이잠의 학문은 아버지 매산과 그보다 13세 연상인 형 청운, 그리고 16세 연상인 매부 목창명(睦昌明)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는 16세가 되던 1675년(숙종 1) 을묘사마시(乙卯司馬試)에 진사로 합격하지만 아버지의 경계에 따라 대과 응시를 미룬다. 당시 매산은 그가 재주만 뛰어나고 덕이 부족할까 염려하여 '큰 그릇은 일찍 이루어지는 것을 꺼린다.(大器忌早成)'고 경계하였다. 하지만 이로부터 5년 뒤인 1680년(숙종 6)에 일어난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부친이 평안북도 운산(雲山)으로 유배되고, 2년 뒤 그곳에서 운명하자 이잠은 22세의 젊은 나이로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였다. 이후 이잠의 삶은 비분과 강개에 가득 차게 되었다. 비록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이후 6년간 남인(南人)의 재집권 시기가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다시 노론(老論) 계열이 정권을 장악하자 정치권에서 소외된 남인의 후예로써 그는 강한 좌절감을 느꼈다. 이런 좌절감 속에서 그는 무명옷과 짚신 차림으로 자연을 유랑하며 주변의 어린 자제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그의 삶을 일관하였다. 특히 그는 부친의 사후 안산(安山)에 은거해 있던 권대후(權大後)의 딸인 계모 안동권씨(安東權氏)에게 문안을 드리고 막내동생 이익의 학업을 지도하는 것 이외에는 일정한 거처나 목적이 없는 방랑생활을 계속하였다. 방외의 삶을 살던 그는 경상도 유생인 임부(林溥)가 김춘택(金春澤)의 처벌과 국정쇄신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려 귀양 가자 적극적으로 현실 속에 뛰어든다. 평소 노론계 김춘택의 행위에 강한 불만을 느꼈던 그는 김춘택이 희빈장씨(禧嬪張氏)의 소생인 원자(元子) 이윤(李○: 뒤의 景宗)의 세자 책봉을 미루는 것이 원자를 제거하고 연잉군(延○君: 뒤의 英祖)을 후사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여겼다. 이에 그는 1706년(숙종 32) 9월 17일에 상소를 올렸다.이 상소는 당시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계의 거센 반발과 숙종의 진노를 일으켜 그는 참혹한 국문을 당한다. 9월 18일부터 25일까지의 국문(鞠問)에서도 끝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마침내 25일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그의 상소는 이후로 계속 언급되어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 되었고, 그에 대한 평가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양 극단으로 나뉘어졌다. 그는 자각의식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세상을 추구하였는데, 그 기본이 되는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 익혀야 할 학문'으로 경학(經學)과 예학(禮學)을 들었다. 그의 경학은 주해보다는 성인의 본지를 찾는 것이었고, 예학은 몸에 익히는 것이었다. 이런 학문관은 그가 바라던 세상을 현실 속에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경학과 예학을 인식한 것이었다. 그의 시세계는 청신(淸新)과 고절(孤節)의 정신경계를 추구하였으며, 울분과 장열한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그가 평생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번뇌하는 삶을 살았던 것과 같이 그의 시는 고뇌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상과 괴리된 현실에서 일어난 그의 고뇌와 울분은 시 속에서 현실에 대한 비난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가 지향하는 이상세계에 대한 희구와 갈등으로 나타난다. 그의 울분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는 더 높은 이상세계를 추구하며 갈등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현실 속에서 고통 받는 백성들의 모습에 대해 강한 애정을 보이며 그들을 질곡으로 몰아넣는 현실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렇기에 시 속에 드러나는 그의 고뇌와 울분은 그의 시가 그의 삶과 일치한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