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덕록(李德祿)
  • 여주이씨(驪州李氏),  출생~사망 : 1677 ~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중여(重與). 호는 동고(東皐). 부친은 이학(李○)이다. 1721년(경종 1) 신축증광사마시(辛丑增廣司馬試)에 생원(生員) 3등으로 합격하였다. 풍채와 기골이 장대하고 성품과 도량이 중후하였다. 한적한 곳에 서재를 정결하게 마련하여 서책을 쌓아두고 날마다 후학을 지도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도산(陶山)의 '언행록(言行錄)' 두 권이 있었는데, 그는 이본(異本)을 가지고 매우 엄격하게 분석하고, 도를 논한 후 돌려보냈다. 경주(慶州)에 사마소(司馬所)가 없어지자 사마시(司馬試)에서 같이 합격한 손경걸(孫景杰)과 더불어 의논하여 새로 짓고 규범을 갖추게 했다. 여러번 추천을 받아서 마침내 영릉침랑(英陵寢郞)에 제수하라는 왕명을 내렸을 때에 그는 이미 사후라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