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황응규(黃應奎)
  • 창원황씨(昌原黃氏),  출생~사망 : 1518 ~ 1598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중문(仲文). 호는 송간(松澗). 아버지는 우찬성 사우(士祐)이며, 어머니는 오수정(吳壽楨)의 딸이다. 주세붕(周世鵬),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에 입학하여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뒤 태학(太學)에서 그 재주를 아껴 추천하여 전함사별제(典艦司別提)가 되고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에 이르렀다. 1569년(선조 2) 52세로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에 임용되고, 호조, 형조, 공조의 정랑과 좌랑 등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1588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였고, 소명이 있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곡을 균량으로 바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르고, 1594년 동지돈령부사가 되었다. 또한, 향병대장(鄕兵大將)으로 추대되어 마을사람들에게 의기를 고취하고 장정, 군량 등을 모집하여 출전하였다. 초서(草書)를 잘 썼다. 저서로 '송간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