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중명(仲明). 사직 승리(承利)의 아들이다. 품행이 매우 방정하고 효도가 극진하였다. 1543년(중종 38) 생원이 되고, 1548년(명종 3) 부묘별시문과(부묘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예문관검열을 지냈다.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하여 외직을 자청하여 진주, 곤양 등의 세 고을을 다스린 바 있는데, 모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1553년 무렵에 공조좌랑을 지낸 바 있으며, 이어 헌납 등을 거쳐 성균관사예 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