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중겸(仲謙). 부사(府使) 인호(仁豪)의 아들이며, 인걸(仁傑)의 조카이다. 1572년(선조 5) 친시문과(親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1581년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이어 강원도어사(江原道御史),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을 지내고 1588년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이조참의(吏曹參議), 1589년 병조참판, 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인자하였으며 사정(邪正)의 시비를 가려낼 때에는 의논이 강직하여 남에게 굴하지 않아서 명망이 두터웠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아들 수민(壽民)이 정여립의 형 여흥(汝興)의 딸을 아내로 삼았던 탓으로 연좌되어 사형당하자 사직하였고, 이어 서인(西人)으로부터 백인걸(白仁傑), 백유함(白惟咸) 부자가 탄핵을 받자 부령에 유배, 장살(杖殺)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