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제부(濟夫). 호는 우암(寓庵), 제촌(霽村). 아버지는 사빈(士彬)이다. 1519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현량으로 추천되어 홍문박사(弘文博士)가 되었으며, 검열을 역임하는 등 신진사류로 촉망을 받았다. 그러나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대사헌 이항(李沆), 대사간 이빈(李○) 등의 탄핵을 받아 용궁현감으로 좌천되어 울분 속에 지내다가 죽었다고 하는 설과 금산군수로 좌천되어 부임하러 가다가 병들어 죽었다는 설이 있다. 기묘명현(己卯名賢) 중의 한 사람으로, 뜻이 소박하고 자질이 순후하며 학문이 해박, 통달하고 효행과 우애와 지조가 있었다. 뒤에 부제학에 추증되고, 예천의 봉산서원(鳳山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