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강선여(姜善餘)
  • 진주강씨(晋州姜氏),  출생~사망 : 1574 ~ 1647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적이(積而). 돈령부첨정(敦寧府僉正) 수곤(秀○)의 아들이다. 1606년 사마시를 거쳐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 평안평사(平安評事)를 지내고 공조좌랑, 예조좌랑, 병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이귀(李貴)가 그를 청요직(淸要職)에 두려 하였으나, 외직으로 나가기를 원해 영천군수가 되었다. 이듬해 형조정랑을 지내고 이어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사도시정(司導寺正)을 역임하였다. 1626년 1년 동안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내고, 관직에서 물러나 청양(靑陽)에서 살았다. 1627년 명나라 희종(熹宗)이 죽어 이듬해 진향사(進香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통례원(通禮院)의 좌, 우통례를 지냈다. 1633년 첨지중추부사에 이어 형조참의가 되었으나, 법대로만 일을 처리하고 굽히지 않다가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까지 왕을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동지충추부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