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임담(林墰)
  • 나주임씨(羅州林氏),  출생~사망 : 1596 ~ 1652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요(淸曜), 청구(淸○). 증조부는 승지(承旨) 임붕(林鵬)이고, 조부는 풍암(楓巖) 임복(林復)이며, 감사(監司) 임서(林○)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 평택임씨(平澤林氏)는 임식(林植)의 딸이며, 부인 청송심씨(靑松沈氏)는 심광세(沈光世)의 딸이다. 나주(羅州)에서 태어났다. 1616년(광해군 8) 병진증광사마시(丙辰增廣司馬試)에 생원 3등으로 합격하고 1635년(인조 13) 현감(縣監) 재직 당시 을해증광문과(乙亥增廣文科)에 병과 7등으로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임금을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모시고 들어가 총융청종사관(摠戎廳從事官)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이듬해 화의가 성립되어 환도하자 호남 지방의 진휼어사(賑恤御使)가 되었다. 1639년(인조 17) 좌승지(左承旨)로 사은부사(謝恩府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후, 1644년(인조 22)에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부임하면서 서원(書院)이 사당화(私黨化)되는 폐습을 상소하였다. 1646년(인조 24)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있을 때, 유탁(柳濯)의 난을 평정하여 품계가 오르고 토지를 하사받았으나 사양하였다. 1645년 충청감사(忠淸監司), 1646년 평안감사(平安監司), 1648년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냈고,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1649년 이조판서(吏曹判書), 1650년 예조판서(禮曹判書)가 되었다. 이처럼 그는 중국에 세 번 사신으로 갔다 오고, 다섯 번 접반사(接伴使)가 되어 탁월한 외교수완을 발휘하였다. 중앙 요직에 있었으나 청렴 검소하여 형인 승지(承旨) 임연(林○)이 집을 사주기도 하였다. 1652년(효종 3) 우참찬(右參贊), 예조판서(禮曹判書)를 거쳐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 승진하였고, 같은 해 7월에 청나라 사신의 반송사(伴送使)로 의주(義州)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산(嘉山: 평북)에서 병으로 죽었다. 이후 숙종 때에 충익(忠翼)의 시호를 받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