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재(朴榟)
  • 고령박씨(高靈朴氏),  출생~사망 : 1564 ~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정(子貞). 대용(大容)의 아들이며, 판서 건(楗)의 아우이다. 1602년(선조 35)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1606년 감찰, 이듬해 공조좌랑이 되었다. 1609년(광해군 1)에는 정언이 되었고, 이어서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문학을 거쳐, 1612년 지평(持平), 이듬해 사서(司書)에 이어 장령이 되었고, 1614년에는 집의가 되어 필선(弼善)을 겸하였다. 1615년 홍문관부응교에 이어 사간이 되었으며, 김제남(金悌男)의 옥사(獄事)를 다스린 공으로 궁자(弓子) 1정(丁)을 하사받았다. 1617년 정사 오윤겸(吳允謙)과 함께 회답부사(回答副使)로 일본에 가서 임진왜란 때 잡혀갔던 피로인(被虜人) 150명을 인솔해 왔으며, 이때부터 일본 과의 수교가 정상화되었다. 1618년 행호군이 되었고, 이어서 강릉부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