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임(子任). 호는 사촌(沙村).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현손이며, 극포수(極浦守) 희남(希男)의 아들이다. 1576년(선조 9)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그뒤 호조좌랑, 예안현감, 형조와 공조의 정랑 등을 거쳐, 1589년 안악군수로 있을 때 한준(韓準), 박충간(朴忠侃), 한응인(韓應寅)과 함께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을 조정에 고변한 공으로 이듬해 평난공신(平難功臣)1등으로 완산군(完山君)에 봉하여지고 공조참판으로 승진되었다. 그뒤 형조판서, 우참찬을 역임하고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건의대장(建義大將) 심수경(沈守慶)의 부장으로 의병을 지휘하였고, 1594년에는 진휼사가 되어 서울의 백성을 구휼하였다. 이어 좌참찬을 거쳐, 1611년(광해군 3)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올랐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안양(安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