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이(子以). 판서 충원(忠元)의 증손으로, 봉례(奉禮) 안행(安行)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1630년(인조 8) 중형(仲兄) 승휴(承休)와 함께 진사가 되고,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정자에 보임되었다. 이어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병조좌랑 등을 거쳐, 1652년에는 정언(正言), 사서(司書), 직강(直講), 예조정랑을 지냈다. 정언으로 있을 때는 형조판서 허적(許積)을 논핵하였으며, 1661년(현종 2)에는 지평(持平),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를 역임하고, 이듬해에는 장령(掌令)이 되었다. 1663년에는 종부시정(宗簿寺正)에 올라,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들어가다가 지병이 도져서 도중에 돌아오고 말았다. 이때 그는 사신의 임무를 마치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삼아, 그뒤에도 계속 조정에 청나라의 사신으로 보내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뒤 제용감정(濟用監正)을 거쳐, 1664년 9월 상주목사(尙州牧使)로 재직하던 중 관곡을 방출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고 민역(民役)에 충당한 사실로 가자(加資)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