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온(子蘊). 호는 동리(東里). 징의 손자로, 판서 사익(思翼)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정세걸(鄭世傑)의 딸이다. 1531년(중종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4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승문원에 들어갔다가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었고, 이어서 예조, 병조, 형조의 좌랑, 사간원정언, 성균관전적, 홍문관수찬, 사헌부의 지평, 헌납, 장령, 홍문관의 전한, 직제학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551년(명종 6)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올랐다. 이어서 좌승지를 거쳐 1553년(명종 8) 남양부사에 임명되어 외직으로 나갔는데, 그뒤 양주목사, 부평부사, 해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한성좌윤이 되어 중앙으로 돌아왔다. 그의 딸이 순회세자(順懷世子)의 빈(嬪)이 됨으로써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가 되기도 하였고, 공조참판, 동지중추원사를 거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부총관으로 재직하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