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온(子溫). 증조는 김안도(金安道)이고, 조는 증의정부영의정(贈議政府領議政) 김오(金○)이고, 아버지는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아버지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이다. 어머니는 광주노씨(光州盧氏)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으로 노계(盧○)의 딸이다. 김선은 선조의 처남이다. 14세에 초시(初試)에 합격하여 예조(禮曹)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13년(광해군 5) 이이첨(李爾瞻) 등에 의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했다는 모함을 받아 아버지와 형들이 모두 죽었다. 당시 그도 옥에 갇혔지만 20세 미만은 처형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처형되지 않자, 빨리 죽여 달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1614년 2월 16세의 나이로 죽었다.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과 과거 공부를 같이 하였는데, 김선의 문예를 따를 수 없다고 항상 칭찬하였으며 죽을 때까지 아까워하고 한탄하였다. 처음에는 고양(高陽)의 선영에 장사지냈으나 1623년(인조 1년) 10월에 원주(原州)의 안창리(安昌里)에 있는 아버지 김제남의 무덤 곁에 장사지냈다. 어린 나이에 죽어 혼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 노씨 부인이 후사가 없는 것을 걱정하여 김내(金○)의 둘째 아들 김군석(金君錫)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