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옥(子玉). 증조부는 김안도(金安道)이고, 조부는 증의정부영의정(贈議政府領議政) 김오(金○)이며,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장남으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오빠이다. 어머니는 광주노씨(光州盧氏)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으로 노계(盧○)의 딸이다. 1606년(선조 39) 병오식년사마시(丙午式年司馬試)에 생원(生員) 3등, 진사(進士) 2등으로 합격하였다.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를 시작으로 세자익위사부수(世子翊衛司副率),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 공조좌랑(工曹佐郞),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익위사익위(翊衛司翊衛)를 역임하였다. 그 뒤 용강현령(龍崗縣令), 김포현령(金浦縣令), 안산군수(安山郡守), 부평부사(富平府使), 청주목사(淸州牧使)를 지냈다. 1613년(광해군 5년) 안악군수(安岳郡守)에 제수되었으나 관소(官所)에 도착한 지 10일이 못되어 계축옥사(癸丑獄事)를 만나 아버지 김제남과 3형제가 모두 화를 당하였다. 이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되었다. 부인 초계정씨(草溪鄭氏)는 군수(郡守) 정수묵(鄭守○)의 딸이자, 팔계군(八溪君) 정종영(鄭宗榮)의 손녀이다. 2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김천석(金天錫)이고, 차남은 김군석(金君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