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문려(文勵)
  • 남평문씨(南平文氏),  출생~사망 : ? ~ 1623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신(子信). 호는 운계(雲溪). 사도정(司○正) 익성(益成)의 아들이다. 정인홍(鄭仁弘)의 문인으로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고, 그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의주 까지 호종(扈從)하였다. 이듬해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왜적을 치는 데 크게 공을 세웠다. 1600년 헌납, 교리를 거쳐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이 되고, 이듬해 외직인 창원판관(昌原判官)으로 나갔다가 1602년 장령(掌令)이 되었다. 1603년 집의(執義)가 되어 그의 스승인 정인홍을 모함한 이귀(李貴)를 탄핵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고향인 영남으로 돌아갔다가 곧 상의원정(尙衣院正)으로 복직, 이어서 필선(弼善)이 되었다. 1604년 사섬시부정(司贍寺副正)을 거쳐, 통례원찬의(通禮院贊儀)가 되었다. 그뒤 종묘서영(宗廟署令)을 지내고, 이어서 대사간이 되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정인홍의 문인이라는 이유로 국문을 받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