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선(子善). 호는 서한당(棲閑堂). 군수 사용(思容)의 손자로, 정랑 여준(汝俊)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효우(孝友)가 극진하였으며, 학문에 힘써 1597년(선조 3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간 뒤 전적을 역임하고,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특히, 제주목사로 부임한 뒤 7개월 동안에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공역(工役)을 파하였으며, 수입을 박하게 하여 지출을 절약하게 함으로써 제주도민을 숙연하게 하였다. 뒤에 경주부윤을 지냈으며 청백리로서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