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서(子瑞). 증조는 김안도(金安道)이고, 조는 증의정부영의정(贈議政府領議政) 김오(金○)이고, 아버지는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아버지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이다. 어머니는 광주노씨(光州盧氏)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으로 노계(盧○)의 딸이다. 전서(篆書)와 예서(隷書)를 잘 썼고, 12세에 선대(先代) 의정공(議政公)의 묘문(墓門)에 직접 해서(楷書)로 글씨를 썼다. 선조가 그에게 시를 짓게 하고서 칭찬하며 책을 내려 권장하기도 하였다. 1610년(광해군 2) 15세 때 경술식년사마시(庚戌式年司馬試)에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였고, 백주(白州) 이명한(李明漢)과 절친했다.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한다는 무고죄(誣告罪)에 연루되어 아버지 김제남과 3형제가 모두 옥사(獄死)했다. 후에 인목대비가 복위(復位)되면서 아버지 김제남은 영의정(領議政) 에, 김규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증직(贈職)되고 의례(儀禮)대로 제사지냈다. 도성 서문 밖에 거적으로 싸서 묻혔다가 고양(高陽)의 대자동(大慈洞)에 이장하여 예장(禮葬)을 지냈다. 달성도위(達成都尉) 서경주(徐景○)의 딸과 결혼하여 1남 김홍석(金弘錫)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