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릉(子陵). 호는 행원(杏園, 또는 杏院). 진천 출신으로 사과 금의 아들이다. 사림파로서 조광조(趙光祖)와 교유하였고, 1519년(중종 14)현량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 정언을 역임하였다. 정언으로 있을 때 조광조 등과 함께 중종반정 공신에 대한 삭훈을 상소하였으나 중종이 허락하지 않아 양사가 사직할 때 병을 칭하여 사직하였다. 이해에 기묘사화로 사림들이 숙청당할 때에는 벼슬을 떠나 있어서 화를 면하였다. 그뒤부터 관직에 나가지 않았는데, 특히 1545년(명종 즉위년)현량과가 복설되어 병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거절하고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진천의 백원서원(百源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