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구(子耉). 우의정 응인(應寅)의 손자로, 동지돈령부사 덕급(德及)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참판 김일(金逸)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과 정엽(鄭曄)의 문인이다. 1633년(인조 11) 생원과 진사의 양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동료 유생들과 함께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에 배향할 것을 상소하였다가 허락되지 않자 과거시험을 단념하고 은거하였다. 그뒤 아버지의 요청으로 벼슬길에 나가 음보로 감찰이 되었으며, 이어서 공조좌랑, 예산현감, 의금부도사, 사도시주부, 종묘서영, 안성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효종의 북벌계획을 도와 강화를 요새화하는 데 힘썼다. 그뒤 호조정랑을 거쳐, 이천부사, 한성부서윤, 대구부사를 지낸 뒤 상주목사에 재직중 임지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