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고(子高). 호는 우곡(愚谷). 아버지는 우승지 확이다. 1628년(인조 6)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된 후 전적, 이조좌랑, 정랑을 거쳐 1635년에는 정언이 되었다. 그뒤 지평을 역임하고, 경상도도사로 재직중 병으로 아산에 은거했다. 1641년 장령이 되었으며 헌납, 집의를 거쳐 1651년(효종 2)에는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었고, 이듬해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3년 필선이 되고, 이어서 승지가 되었다. 1660년 효종이 죽자 조대비(趙大妃)의 복제문제로 논쟁이 있을 때 3년설을 주장하는 윤선도(尹善道)를 지나치게 규탄하다가 파면되었다. 후에 복직하여 1661년(현종 2) 간성군수가 되었다. 이때 혹심한 흉년으로 굶주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는 진곡(賑穀) 2천섬을 별도로 마련하여 이들을 잘 구휼하였으므로 포상으로 가선대부로 승품되었으며, 1663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병조참의, 우승지, 좌승지, 공조참판을 거쳐, 1668년 한성부우윤, 이어서 한성부좌윤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