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유영립(柳永立)
  • 전주유씨(全州柳氏),  출생~사망 : 1537 ~ 1599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입지(立之). 아버지는 사인 감(堪)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 윤무(允武)의 딸이다. 1568년(선조 1) 사마시에 합격, 생원이 되고 그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사인, 지평, 영변판관, 보성군수, 철산군수, 공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1582년 종성부사가 되었는데, 이듬해 이탕개(尼蕩介)의 난으로 1만여명의 야인이 침입하자, 우후 장의현(張義賢), 판관 원희(元喜) 등과 이를 막으려다 마침내 성이 함락되자 그 책임으로 하옥되었다. 곧 풀려나 승지, 개성유수를 거쳐 1586년 경상도관찰사, 1588년 전라도관찰사, 1591년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이듬해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산 속으로 피신하였다가 가토(加藤淸正) 휘하의 왜군에게 포로가 되었으나 뇌물로 매〔鷹〕를 바치고 탈출,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였다. 유성룡(柳成龍)의 변호로 곧 복직되어 병조참판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