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이중(而中). 호는 졸탄(拙灘). 아버지는 참봉 덕무(德懋)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인(麟)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80년(선조 13)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헌납(獻納)으로 재임중에 이이(李珥)를 비난하는 정여립(鄭汝立)을 논박하다가 파직당하였다. 1590년 지평(持平)으로 복직되었으나 그 이듬해 정철(鄭澈) 등이 축출당할 때 다시 파면당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문학, 교리, 지평, 사간 등을 역임하고, 난이 끝난 뒤 사인(舍人), 수찬(修撰), 직강(直講), 연안부사, 사복시첨정 등을 거쳐 호조참판이 되었다. 1612년(광해군 4) 임진왜란 때 전주로 광해군을 호종한 공으로 청풍군(淸風君)에 봉해졌다. 1615년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정치가 문란하므로 사직하였다. 1617년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강계로 유배되었다가 무안으로 이배되어 5년 뒤 그곳에서 죽었다. 인조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청풍의 봉강서원(鳳岡書院)과 무안의 송림서원(松林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