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이옹(○翁). 호는 석곡(石谷). 안음(安陰) 출신. 교위 한량(漢良)의 아들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유생으로 있다가 1569년(선조 2) 아버지가 죽자 학업을 그만두고 오직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효행으로 천거받아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金沔)이 고령, 거창, 현풍 등 경상도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정유명(鄭惟明) 등과 함께 안음에서 기병유사(起兵有司)로 창의문(倡義文)을 발통하는 등 김면의 참모가 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고, 의약(醫藥), 복서(卜筮), 산경(山經), 지지(地誌) 등 유학 이외의 분야도 두루 섭렵하였다. 지평에 추증되고, 안의(安義)의 구연사(龜淵祠)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문집인 '석곡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