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의백(毅伯). 아버지는 임천군수 남수(○壽)이며, 어머니는 선무랑 유형필(柳亨弼)의 딸이다. 부친이 낙향하자 가까이에서 모셨으며 동거하는 여러 제매들과도 우애가 돈독하였다. 나이 40이 되어 벼슬길에 나가 군자감, 제용감봉사를 거쳐 1616년(광해군 8) 율봉도찰방(栗峯道察訪)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선비들이 사장(詞章)에 기우는 것을 보고 '이름을 떨치고 어버이를 드러내는 길은 과거에 합격하는 데에 있으나 사예(詞藝)만을 전공함은 구차한 것으로 강경(講經)하는 것만 못하다.'고 지적하고, 이후 경학에 몰두하였다. 1623년(인조 1) 개시문과(改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에 임명되었으나 질병으로 이해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