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송시형(宋時瑩)
  • 은진송씨(恩津宋氏),  출생~사망 : 1592 ~ 1638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유휘(幼輝).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송희조(宋熙祚)이고, 생부는 습정공(習靜公) 송방조(宋邦祚)이다. 생외조부는 정곡(鄭谷)이다. 1633년(인조 11) 계유식년사마시(癸酉式年司馬試)에 진사(進士) 2등으로 합격하였다. 진사로 있을 때에 정인홍(鄭仁弘) 등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우계(牛溪) 성혼(成渾)을 폄하하자 여러 유생들을 이끌고 주동이 되어 율곡과 성혼을 극력 변호하였다. 1636년(인조 14) 금(金) 나라의 사신 용골대(龍骨大)가 서울에 들어와 참호(○號)를 청하자 다시 제생을 이끌고 그를 참할 것을 상소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포위되고 주화파(主和派)가 승리하여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을 당하게 되자, 봉림대군(鳳林大君: 孝宗)이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북행(北行)할 때 사부(師傅)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이에 인조가 북행을 압피(壓避)하는 것이라 하여 하옥시켰는데, 질병으로 사임하였다는 공사(供辭)를 지어 올려 겨우 석방되었다. 집에 돌아온 지 수십일 만인 1638년(인조 16) 정월 4일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청원군(淸原郡) 남사현리(南沙峴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