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유안(幼安). 호는 의속헌(醫俗軒).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현손(玄孫)으로, 아버지는 현감(縣監) 송요신(宋堯臣)이다. 어려서부터 영오(穎悟)하여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특히 조리가 있어 문장이 뛰어났다고 한다. 1727년(영조 3) 27세의 나이로 정미증광사마시(丁未增廣司馬試)에 생원(生員) 장원하였고, 1741년(영조 17)에는 정릉참봉(貞陵參奉)을 역임하고, 1743년(영조 19)에는 빙고별제(氷庫別提)를 하다가 그 이듬해 전설별제(典設別提)를 거쳐 장학원주부(掌學院注簿)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문학으로 발탁되어 동궁익찬(東宮翊贊)에 제수되었는데,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또 나중에는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제수되었고, 곧 봉화현감(奉化縣監)에 임명되어 외직으로 나가기도 하였다. 외직에 있을 때는 흉년을 맞아, 진휼에 힘써 많은 치적을 쌓았다. 1746년(영조 22) 4월 1일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현재 대전시 서구 내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