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유활(柳活)
  • 흥양유씨(興陽柳氏),  출생~사망 : 1576 ~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원숙(源叔). 호는 태우(泰宇). 몽표(夢彪)의 아들이다. 1605년(선조 38)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1년(광해군 3) 사간원정언에 피임되고, 이어 세자시강원사서, 사간원헌납, 사헌부지평, 승문원 전한, 성균관직강, 홍문관교리, 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으며, '선조수정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621년 흉도와 결탁하여 정치를 혼탁하게 하였다는 탄핵을 받았다. 1623년(인조 1) 삼사는 그가 이이첨(李爾瞻)과 대립하기는 하였으나 폐모론을 주장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므로 삭탈관작으로는 징악이 부족하니 변방에 위리안치할 것을 주장하였다. 1628년 유효립(柳孝立)의 모반에 관여한 혐의로 다시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