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원보(元甫) 또는 원포(圓圃). 호는 송암(松菴) 또는 여수(驢○). 정종의 제10자 덕천군(德泉君) 후생(厚生)의 현손이며, 간의 아들이다. 1566년(명종 21)별시문과에 장원급제, 홍문관수찬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임진왜란 때 형조참의로 걸어서 왕을 의주까지 호종(扈從), 서울로 돌아와 형조참판에 특진되었다. 그뒤 중추원의 첨지중추부사, 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으며,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2등으로 완양부원군(完陽府院君)에 봉하여졌고,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났는데, 작품으로는 경기도 고양의 '계원군이의묘비 桂原君李艤墓碑'와 광주(廣州)의 '조찬성계상묘비 曺贊成繼商墓碑'가 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