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용보(容甫). 송갑조(宋甲祚)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 선산곽씨(善山郭氏)는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부인은 이시생(李蓍生)의 딸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형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 이후 시속이 혼란하다 하여 향당(鄕黨)에 나가지 않고, 밭을 갈며 부모를 돕는 한편, 독서에 전념하였다. 제원도찰방(濟原道察訪)으로 시작하여 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 ○ 사재감주부(司宰監注簿) ○ 광흥창주부(廣興倉注簿) ○ 익위사사어(翊衛司司御)를 거쳤다. 외직으로는 부여현감(扶餘縣監)과 제천현감(堤川縣監), 익산군수(益山郡守)와 진산군수(珍山郡守)를 역임하였다. 평소 근신하여 어떤 일에도 구차함이 없었으며, 늘 과묵하였다. 1672년(현종 13) 7월 5일에 사망하였는데, 그 묘소는 현재 대전시 동구 판암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