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영이(詠而). 호는 탄암(坦菴). 아버지는 지한(之翰). 1539년(중종 3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관직생활은 홍문관정자에 그쳤다. 1571년(선조 4) 옥천에 서원이 세워져 그곳에 향사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21년(광해군 13) 다시 중건되어 조헌(趙憲)과 함께 향사되었다. 그러나 생전에는 정자(程子)를 배척하였으며 학문적 입장에서 볼 때 조헌과 같은 위치에 둘 수 없다는 김약(金○)의 주장으로 출향(黜享)되었다. 숙종 때 그를 향사하기 위해 향인들이 따로 사우(祠宇)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