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영로(靈老). 호는 송담(松潭). 안악군수 세적(世勣)의 아들이다. 1578년(선조 11) 음보(蔭補)로 사포서별제에 임명된 뒤 의영고직장, 상의원주부, 사헌부감찰, 정산현감, 종부시주부, 상의원판관, 평시서령, 호조정랑, 통천군 수, 임천군수 등을 역임하였고, 지방관 재직시에는 치적으로 읍민이 송덕비를 세워주기도 하였다. 1601년 임천군수로 재직중 임진왜란 때 주장(主將)을 구하지 않은 수령으로 탄핵받아 치죄당하였으나 곧 사면되었다. 이후 벼슬에 뜻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 한가로이 지내면서 선조인 유(愉)의 제실 쌍청당(雙淸堂)을 중수하여 송(松), 국(菊), 매(梅), 죽(竹)을 심어 소영(嘯○)하고, 옛 선인의 언행을 초록하여 '검신요결 檢身要訣'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