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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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인 족보를 근거로 대조해 가며 확인하는 방법도 실효를 거둔다.
언성군 김중만 장군대좌의 실증

김중만 장군 영정(金重萬 將軍 影幀)
1996년 초여름 조선말엽의 무신 언성군(彦城君) 김중만(金重萬) 장군을 만나보기 위해 안성땅으로 향하였다. 사당에 들러 사당참배를 마치고 큰 길을 다시 나와 고삼저수지 쪽으로 조금가다 큰 다리를 건너니 왼편으로 들판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1km쯤 가면 양성면 방축리가 나온다는 묘소는 마을을 지나 언덕을 넘어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바라보아도 산세가 웅장하고 생기가 있어 보였다.

솔밭속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니 산 기슭에 광산김씨의 묘가 몇 기 있고, 그 뒤로 능선 최상부에 남향으로 분묘가 하나 있는데, 봉분은 큼직하게 가꿔져 있으나 어찌된 일인지 석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첫눈에 보아도 그 자리가 장군대좌임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혈처가 높아 전후좌우가 시원하게 트였는데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맞은편 남쪽을 막고 서있는 말모양의 수려한 산이었다.

패철을 놓고 수구(水口)와 입수(入首)를 살펴보니, 혈후(穴後)가 잘록하게 속인(束咽)이 되어 있고, 혈성(穴星)은 높이 솟아 있는데 명당 밖 수구는 정파(丁破)에 건입수(乾入首)로 복종체(覆鍾體)의 노양혈(老陽穴)이었다. 우선룡(右旋龍)에 좌선수국(左旋水局)으로 간인득(艮寅得)이며 좌청룡이 좀 낮기는 하여도 겹겹이 나성(羅城)처럼 벌여 있는데, 우(右)편으로는 기치사(旗幟砂)의 백호(白虎)가 기세가 등등하게 버티고 있다. 앞쪽으로는 널찍한 명당을 건너 병오방(丙午方)에 천마봉(天馬峰)이 참으로 수려한데, 이를 안산(案山)으로 삼아 임좌병향(壬坐丙向)의 자왕향(自旺向)을 하였으니 당대에 장군이 아니나오고 어쩌겠는가?

김중만 장군의 조부묘를 얻어 쓰기까지의 일화가 재미있어 소개해보면, 김장군의 부친은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막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길을 가던 중 행색이 초라한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노승이 걸린 병은 그 무섭다는 염병이었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지만 젊은 부부는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그 스님을 보살펴 주었으며, 많이 회복되어 스님이 길을 나서려고 하면 완쾌될 때까지 보살펴 주겠다하며 극구 만류하였다. 마지못해 주저앉은 노승은 그럭저럭 겨울을 나고 몸이 완쾌되어 젊은 주인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빈도가 운수가 나빠 몹쓸 질병을 얻어 다 죽게 된 것을 위험을 무릎 쓰고 목숨을 구해 주었으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길을 떠나는 마당에 주인의 소망을 한가지 들어 줌으로써 은혜에 보답하고자 근처에 명당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10년 내에 일천석의 부를 이룰 땅이요 다른 하나는 당대봉군(當代封君)이 날 자리인데 그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이지만 그 젊은이는 그래도 공명(功名)이 좋아 봉군지지(封君之地)를 택하여 스님이 일러 준대로 아버지 묘를 쓰고 아들을 낳으니 이이가 김중만 이었다. 그리고 이곳이, 장군대좌의 명당으로 그 후 수백년을 자손이 번성하고, 벼슬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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